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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A 6nd, 야고보서 3:1-12, 언어의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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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 일상에 그대로 반영된다. 반대로, 일상의 모습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기도 한다. 즉, 믿음과 일상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바뀌면 믿음이 깊어진다. 깊은 믿음을 가질수록 우리의 말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기 연예인이 말 실수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말 한마디로 그동안의 커리어가 다 날아간다. 누군가가 말실수를 하면 그 실수 하나를 꼬집에 그 사람을 매장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비판의 댓글이 달리는 건 맞지만, 말실수로 인해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이 사람이 이전에 어떤 말과 행동이 했는지 여지없이 하나씩 발견된다. 이전에 했던 언행을 반영해 연예인이 했던 말이 실수인지, 본심인지 네티즌들은 판단한다. 그리고 그 본심이 일반 상식과 도덕을 넘어갈 때 네티즌은 그의 존재를 외면한다.

언어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 가치관, 시야, 관점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성품, 환경, 감정상태도 그대로 녹여져 있다. 그래서 즐거울 때, 슬플 때,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 지쳤을 때 등 동일한 사람에게서 나오지만 말의 색깔과 느낌은 달라진다. 그래서 상대와 한,두시간을 대화하다 보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좋은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깊은 매력과 친밀감을 느낀다.

믿음도 마찬가지다. 말 속에 우리의 믿음이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를 가치로 두고 사는지, 아니면 복음의 가치를 두고 사는지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질타의 대상은 ‘선생들’이다. 오늘날로 공동체 리더나 목회자 쯤 될 것이다. 가르치는 자들의 언어를 살펴보니, 크게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1) 모호함, (2) 무모함.

모호함은 복음에 대한 몰이해에서 왔다. 다른 사람에게 더 나은 정보를 전달하고 싶지만,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보니 그 설명이 추상적이고 장황했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간결하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다면 뭉뚱그려 설명한다. 또한 지식으로는 알았지만 삶으로는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려면 특이하고 달라야 한다. 타인과 다르게 행동할 때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당시 지도자들의 마인드도 이러했을 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특별한 것을 가르치기 위해, 자신의 정보를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정보로 전달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준비되지 않은 리더로 인해 복음의 본질이 조금씩 훼손되기 시작했고, 교육을 받는 입장에서는 명쾌함 보다 혼란함을 제공받았다.

그래서 야고보는 경고했다. 가르침에 대한 심판이 존재한다고. 그래서 애써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한다. 단순히 복음을 가르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준비되지 않은 채, 혹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 아닌 채 가르치는 것을 경고했다. 더 나아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던진 말이 성도에게 파괴력을 미치는지 그 심각성을 전달했다.

말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가급적이면 말을 줄이는 게 최선의 언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가면서 말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가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단순히 정보 전달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양을 필요로 한다. 더욱 친해지기 위해 단순히 “밥 먹었어?”라는 질문 보다 그 사람의 상황을 어우를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

또한 관계를 맺기 위해 동일한 말을 여러번 해야 할 때도 있다. 우리의 뜻을 피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우리는 AI가 아니기에 같은 말을 반복할 때마다 감정이 앞설 때가 있다. 그래서 관계를 맺을 떄 대화하기 위해 감정을 콘트롤 하기에는 힘들다.

이를 통해 말이 많을수록 관계와 소통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안에 망가진 말은 오고갈수록 관계를 틀어지고 망가뜨린다. 죄와 허물이 드러나기 때문. 그렇다고 침묵만이 능사는 아니다.

‘혀’를 길들여야 한다. 성경에서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표현한다. 왜일까. 말 자체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말이 바뀌려면 생각과 마음, 내 본성 자체를 바꿔야한다. 그래서 말은 평생과제다.

성경은 구원받은 자로써 쉬운작업은 아니지만 한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과 사람을 저주하는 말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말에 주도권을 양도해야 한다. 말은 구성과 형식을 담고 있으니, 이 기준을 하나님께로 맞춰야 한다. 온유하고 친절하고, 단호하지만 분명한 예수님의 성품을 말에 담아 전달해야 한다. 즉, 말이 담은 내용과 형식, 방법, 감정, 어조 그 모든 것들을 주님의 것으로 흉내내야 한다.

옷을 잘 입으려면 패션리더를 따라입어야 한다. 처음에 해야 할 것은 ‘그대로’ 따라 입어야 한다. 서너번 따라서 입다 보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긴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은 우리 믿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따라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따라하는 건 어렵다. 예수님의 성품과 완전함을 따라하기에는 단기간 보다 오랜 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품을 닮기 위해 예수님의 표현 방식을 먼저 끄집어내어 따라내서 말부터 계속해서 훈련해야 한다. 온전한 성품과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결론적으로 답안으로 끄집어낸 말을 기억했다가 따라해야 한다. 어조, 느낌, 감정 등을 예수님의 방법으로 담아 말해야 한다.

온전한 마음은 준비되지 않았지만 형식대로 행하는 것. 율법의 원리가 즉 언어의 원리와 동일하다. 상대에 대한 선한 마음을 준비하지 않은 채 말을 던지는 것은 립서비스 혹은 거짓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성품과 마음을 죽을때까지 천천히 준비해 나가는 투트랙으로 행하자. 표현을 먼저 교체하고, 예수님의 성품을 꾸준히 따라하는 것. 처음에는 그 간격을 클테지만 우리의 마음을 더욱 예수님을 따라한다면 격차는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말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반대로, 말에는 생명을 담고 있어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게 한다. 또 앞으로 나가도록 추진력을 내포하기도 한다. 우리의 언어가 조금은 깊어지고 품위를 갖춰가길 바란다.

이 세상의 교양과 존경을 위한 게 아니라 ‘말=믿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품위를 담길 바란다. 말 속에 담겨있는 우리만의 정답이 있다. 나의 고집, 나의 철학, 나의 생각, 나의 기준. 이것들을 하나씩 걸러내고 예수님의 가치를 담자. 그리고 예수님의 방식대로 온유하고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전달하자. 이 말로 나를 포함해 모든 이들의 생명을 위로하고 살릴 수 있는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자.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말을 통해 성도의 향기를 전달하며 살아가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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