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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기위해모이는교회

24A 7nd, 야고보서 3:13-18, 지혜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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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 야고보서 3:13-18 / <지혜의 출처> / 흩모교 지성해p

‘지혜’에 대해 정의한다면 일반적으로 노하우, 스킬로 설명할 수 있다. 살아가는 모든 일상에서 지혜는 매우 필요하다. 깊이 있는 관계를 필요할 때에도 반드시 관계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야 하며, 상대방의 아픔 혹은 감정에 공감, 인정하기도 해야 한다. 또 각자에 대한 독립된 삶을 존중해야 한다.

지혜는 유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이 시대에 필수적으로 자리잡았다.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가짜 지혜의 형태와 진짜 지혜의 형태.

가짜 지혜는 세상의 지혜로 정의한다. 세상의 지혜는 배우고 실행하면 선하고 좋은 결과 보다 시기, 다툼으로 인한 혼란을 결과로 맞이한다고 한다. 악하고 부정적으로 결과가 나타난다면 세상의 지혜라고 하며, 더 좋은 명분으로 포장된 편법이나 부정임을 말한다.

진짜 지혜는 하늘로부터 왔다. 즉, 출처가 하나님이며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지혜는 성결하게 하며 화명하게 한다. 그래서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한다.

‘지혜’는 좋은 의미일 수 있지만 세상의 지혜는 융통성으로 포장한 관행, 편법임을 알 수 있다. 세상이 주는 좋은 메시지인 것 같지만 이것을 따른다면 마찰과 혼란, 무질서, 악한 일들이 채워지게 될 것을 성경은 말한다. 그래서 바르고 온전한 “진짜 지혜”를 선택하라고, 이것이 성도가 따라가야 할 지혜라고 권면한다.

진짜 지혜와 가짜 지혜에 대한 이론을 머리에 집어넣지만 실제 상황에 맞닥뜨리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마무리 된 이후에는 과거가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는 한다. ‘그 때 그랬더라면’, ‘그 때 그렇게 할 걸’ 등. 하지만 그 일은 이미 끝난 터. 뭐가 문제였는지, 실수였는지 충분히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가짜 지혜를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행하기도 한다. 어떤 게 하나님의 뜻인지 구분하기 어려우며 헷갈려해 명확하게 진짜 지혜를 구분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 안에 나타난 다양한 감정, 욕심, 기호 등이 개입하며 알고도 잘못된 가짜 지혜를 선택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되돌아봤을 때 진짜 지혜를 알아볼 수 있는 성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에 가짜 지혜 보다 하늘에서 온 진짜 지혜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실수하고 성찰하는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짜 지혜인지, 가짜 지혜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 아울러 이를 위해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동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기준. 이 기준은 내 감정과 기호, 욕심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선명한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면 된다.

[첫 번째 질문] 가짜 지혜가 빚는 혼란과 다툼이 과연 언제 나타나는가.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기 시작할 때 다툼은 시작된다. 명성에 금이 가고, 이익이 나에게 오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내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많이 갈 때. 그 때 시기와 질투는 시작된다. 더 나아가 내 욕심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때 싸움이 시작된다.

반대로 진짜 지혜가 만들어내는 것들은 언제 나타나는가. 가짜 지혜와는 반대와의 상황이다. 내 이익에서 자유할 때 나타난다. 끝내 손해보더라도 이익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화평을 이룰 수 있다.

그러므로 진짜 지혜와 가까 지혜의 공통 분모는 약하고 악한 본성을 갖고 있는 ‘나’에게 비롯한다.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에 따라 진짜 지혜인지 가짜 지혜인지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진다.

누군가 내 욕심을 지지하고, 집착을 응원하며, 내 욕심과 탐욕을 뒷받침해준다면 좋은 관계는 아닐 터. 좋은 친구는 나의 모든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바르고 옳은 길을 선택할 때 열렬히 지지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옳은 방법이 아니라면 그 길을 저지한다. 내가 갖고 있는 악한 생각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보면 진짜 친구인지, 무늬만 친구인지 알 수 있다.

동일하게, 가짜 지혜가 내가 맞닥뜨린 상황을 지지한다면 이것은 세상이 주는 것이다. 그러한 지지를 선택해가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망가지며 가족, 이웃의 관계를 비롯해 하나님과의 관계도 망가져간다.

반대로 나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불편하게 하며,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면 진짜 지혜일 가능성이 높다. 나를 성장시키는 선택이다. 맞닥뜨린 상황의 기로에서 나의 욕심을 저지하고 본능이 싫어한다면, 이것은 하늘로부터 온 진짜 지혜다. 우리의 본성에 맞는 것을 멀리하고, 약하고 악한 본성과 맞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선택해간다면 이 선택은 정답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지혜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 대로 따라간다면 성공이라는 부수입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분명한 이유는 우리 안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는 다른 모습을 깎고 다듬어 닮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땅에서 구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공급해주신다.

진짜 지혜는 악한 본성이 싫어하는 방향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우리를 불편하게 할 때도 있다. 손을 계속 쥐기 보다 펴게 하고, 모으기 보다 나누게 하고, 진심과 마음을 다 하도록 하게 한다. 나에게 보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게 하며, 내 본성과 반대로 걷게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얼마나 옳고 바른지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렵다. 신경쓸 게 많고, 나를 제약하는 게 많으며, 하기 싫은 것도 많다. 열받기도 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약한 본능이 거절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본성이 싫어하고 본능이 거절하는 방향으로 걸어가라고 말한다. 그곳으로 갈수록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정답에 가까워진다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는 이 길은 고난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주는 의로운 선물,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진짜 만족감, 진짜 지혜를 선택할 때에만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곳들, 살아가는 시간들 그 모든 것들에서 작고 큰 선택들을 해야 한다. 선택에 앞서 약하고 악한 본성이 편하게 하는지, 불편함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지 눈여겨 보자. 선택을 하는 데 ‘해야 하는’ 지혜가 진짜 지혜인지 가짜 지혜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지혜를 분별하고 선택하자. 그리고 사람과의 사이에서 진짜 지혜를 공유하고, 그 기쁨을 하나님께로 돌리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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