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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기위해모이는교회

24A 11nd, 야고보서 5:1-6, 사라질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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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부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 고생으로 인해 울고 통곡하라고. ‘부’와 ‘통곡’은 우리 인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왜 울고 통곡해야 하는지 2절부터 설명한다. 믿고 신뢰하고 있는 재물들이 영원하지 않는 맥락에서다. 금과 은은 가치가 절대 바래지 않는 것들인데, 이것들마저도 가치가 사라진다고 한다. 이것을 비롯해 명예와 인기를 상징하는 ‘옷’이 한 순간에 좀먹는다고 한다. 영원히 우리를 지지해줄 것 같은 것들이 아무런 가치 없이 썩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부자는 부를 쌓았다. 동물을 떠올려보자. 살이 포동포동하게 잘 오르면 도살장에 끌려가 듯, 세상의 욕심으로 인해 살육의 날에 하나님의 어마무시한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나서 울고 통곡하라는 내용 앞에, 단순히 심판의 경고 뿐만 아니라 ‘회개’를 강조한다. 울고 통곡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깊은 회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자들을 향해 ‘도륙의 날’이라는 잔인한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경고는 무섭게 다가오지 않는다. 부자들을 향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큰 타격감이 없다고 여긴다.

우리는 성경 속 인물들을 투영하기 마련인데, 대체로 의인이나 약자에게 투영하기도 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스토리에서도 기골이 장대한 골리앗 보다는 물맷돌을 던진 다윗에게 투영한다. 우리의 삶의 태도를 분석해보면, 다윗보다 골리앗과 훨씬 가깝다. 성경이 골리앗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힘이다. 무력이 있을 때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지배할 수 있다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다윗이 사울에게 평생을 도망다닐 때, 사울의 결핍으로 인해 온 인생을 허비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을 봤을 때 우리는 사울 보다 다윗에게 투영한다. 누군가에게 모함 받고, 선한 모습을 꿋꿋하게 유지하려는 모습을 확대해서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다윗 보다 사울과 가깝다. 열등감과 결핍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윗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 다윗을 상징으로 하는 성경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우리 안에 스스로를 부자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 속 부자를 향한 메시지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우리를 부한자로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부한 자들의 조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시작할 때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기 시작한다.

부자를 어떻게 정의할까. 내가 부한자가 되지 않으면 오늘의 성경 말씀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메시지가 된다. 그래서 부한자가 누구인지가 오늘 본문의 포인트이다.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따지는 게 아니라 오늘 2-5절의 말씀을 보며 부자들이 갖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자.

4-5절을 통해, 부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행동 양식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행동을 우리가 행하며 살고 있다면 성경이 말하는 부자일 터. 만약 이처럼 살지 않는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교훈 보다는 격려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부자들이 보이는 행동 양식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압제. 부당한 방법으로, 일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줘야 할 삯을 대가 없이 내가 취하며 부를 늘려 가는 것이다.

두 번째로, 쌓아둔다. 쌓아두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비상을 대비한 것. 혹은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아두는 것은 성경이 권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들이 쌓아두는 것은 목적이 존재하지 않지만 모은다. 의미도 없지만 무조건 모아두고 나서 이 모아둔 것의 크기가 내 가치와 위엄을 보장해 준다고 굳건한 믿는 것은 오늘 성경 속 부자들이 갖고 있는 행동 양식이다.

세 번째로, 사치다. 필요가 아닌 과시를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 마음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더 정확히는 나 자신만을 위한 소비가 바로 사치다.

소유하고 싶은 욕구, 게으르고 싶은 욕구, 나를 왕성하게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부한 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다. 즉, 부한 자는 자산의 크기로 정의되지 않는다. 자산을 가지는 목적으로 구별되기 시작한다. 이미 부를 이뤄서 자기의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는 자들과 아직은 부를 갖지 못했지만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성경은 “부한 자들아”라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역시 부한 자들의 영역에 속한다. 그리고 이 경고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적용한다. 물질을 통해 안정감에 기초를 삼고, 과시와 결핍을 채우는 도구로 물질에 소망을 두기 시작할 때 부한 자들을 향한 경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독교는 ‘부’와 굉장히 가깝고도 먼 사이다.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엄밀히 말하면 부를 획득하기에 좋은 조건을 많이 갖고 있다. 사람에 대해 진심을 가지라고 교육받는다. 성경은 원수까지도 모든 정성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하라고 한다. 그리고 돈은 사람을 통해 들어온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융통시키신다. 단순히 하나의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물건을 통해 저 사람이 행복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도 그 진심을 파악하고 더 많이 소비해준다. 그렇게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도 모이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만들어진 물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결핍이 없다. 대부분 돈은 결핍을 위해 지불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비싼 돈을 지불해 결핍을 채우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가치를 알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액세서리로 치장하지 않아도 멋지게 여긴다. 고급 향수를 사용하지 않아도 말과 행동과 눈빛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부를 유지할 수 없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보인다. 통장에 쌓아놓고 나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인다.

더 나아가 우리는 돈을 잘 안다. 평생 우리를 지탱해 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재정을 갖고 있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더 영원한 것, 더 의미있는 것으로 바꾸고자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은 부를 축적하기에 유용하지만 반대로 믿음은 부를 유지하기에 곤란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부러워할 만큼 부를 축적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흘러가야만 아름답다. 고여있으면 악취가 난다. 재정도 마찬가지다. 부에 대한 분명한 소신과 세계관을 갖고 벌든지 모으든지 사용하든지 경제활동에 임하길 바란다. ‘부’는 ‘악’이라는 개념과 어울린다. 부한 자는 악행을 저질러야만 가능한 것 같고, 선한 자는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야 하는 편견에 사로잡힐 때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국룰을 깨며 살아가자. 세상이 만들어놓은 편견이다.

믿음 안에서 더욱 선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방법이 있음에도 선뜻 부의 길을 선택하고, 믿음의 길을 내려놓는 페이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공식은 깨질 수 있는 공식이다. 우리의 인생이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국룰을 깨며 살아가자. 부하지만 악하지 않는, 선하지만 약하지 않는 그러한 그리스도인. 혼란스러운 말세에도 돈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주님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게 진짜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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