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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기위해모이는교회

24A 8nd, 야고보서 4:1-10, 함께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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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 야고보서 4:1-10 / <함께 그러나> / 흩모교 지성해p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믿음을 갖고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 스스로도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를 바라보는 비그리스도인들도 불편하고 힘들 터. 그렇다고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을 타협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이유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분명하게 할 때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르게, 지혜롭게 사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면 세상의 특징과 성향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특징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이 세상의 본질을 정의하는 중요한 문장이다. 세상의 관심은 소수에 앞서가는 사람에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어떻게 하면 일등을 하게 되는지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쟁이 시작된다. 누가 더 빨리 갈 수 있는지, 누가 더 효과적으로 갈 수 있는지 일등의 자리를 놓고 경쟁한다. 무조건 앞서가야 조명을 받을 수 있다.

경쟁에 노출될수록 경쟁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에도 노출되고 있다. 그래서 수많은 경쟁에서 밀리는 과정에서 자괴감, 열등감, 자존감의 스크래치 등이 생겨난다.

세상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야와 범주는 크게 두 가지로 바라본다. 첫 번째는, 일등이며, 두 번째는 일등 이외의 나머지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일등으로 살기 위해 ‘과정’에 뒤따라오는 정직, 정도 등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목표가 일등이라면 수단과 방법은 적절하게 무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일등을 선점했다면 본인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독점하기 위해 일명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 뒤에 있는 후발주자들이 혜택을 함께 누리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성벽을 쌓는다.

어쩔 수 없다. 일등만 기억하고, 승자만 조명을 비추기 때문에 냉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가치는 믿음과 충돌한다. 큰 범죄나 실수가 아닌 경계선에서 우리는 정상에 올라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얻은 복음이 있다. 세상의 방법은 복음의 방법과 반대된다. 세상만 달리 하나님은 일등만 기억하지미 않고, 모든 사람을 기억하시기 때문.

하지만 잘 따져보면 하나님도 일등만 기억하시기도 한다. 하나님도 일등과 그외 사람들과의 분류로 나누신다. 물론 세상이 하는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무한 경쟁을 시키고, 그곳에서 일등 하신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은 아니다. 얼마나 예배를 많이 드리는지, 기도를 몇 시간 더 했는지 합산하시는 분도 아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도모하시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외부에 있는 누군가와 비교, 경쟁시켜 그 사람보다 더 좋은 성적을 얻어야 인정하시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님이 일등에 관심을 두는 것은, 우리‘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경쟁에 집중하신다. 우리 안에는 우선순위라는 개념이 있다. 인생을 살며 어느것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 이 땅을 살아가며 중요하다고 여기는 요소를 어느 것은 취하고, 어느 것은 버리며 살아갈 수 없다. 가족, 직장, 친구관계 등. 지켜야 할 가치는 다양한데 시간과 능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를 매긴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시간과 재정을 효과적으로 분배한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과의 구분과 우리의 구분이 다르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1순위와 2순위, 3순위 등이 구분됐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카테고리는 이분법으로만 나뉘어있다. 1순위와 기타 등등.

하나님을 우리 마음 속에 1위로 두고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자. 굉장히 많은 고민과 마찰을 겪어야 하며, 삶의 부요함과 구원의 은혜는 분명히 있지만 이땅의 삶은 녹록치 않다. 고독할 수도 있고, 모함을 받을 수 있으며, 더 큰 성공을 소유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이 취하는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2순위 정도에 두는 것이다. 하나님을 3순위, 4순위로 밀어버리면 미안하니까, 적당하게 2순위에 두는 정도. 1순위에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개입도 허락하지 않는, 집착할 정도로 사랑하는 요소를 둔다. 그래서 하나님을 순위에 두고, 적당하게 구색을 맞춘다.

하지만 하나님의 분류는 딱 두가지로만 나뉜다. 그렇기 때문에 2순위와 100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성경에서 하나님은 ‘00를 사랑하고 00를 미워한다’라고 표현하시는데, 결코 적당히 좋아한다거나 차등을 줘서 좋아한다고 하시지는 않는다.

오늘 본문 4절에서,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라고도 한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의 가치가 완벽하게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1위의 자리를 차지하시길 원한다. 우선순위에 앉아계실 때 우리의 삶이 가장 선하고 아름답고 멋지게 바뀔 수 있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을 1순위로 모신다는 것은, 모든 삶을 내팽겨친다는 게 아니다. 우리 삶의 주도권을 내어드림으로써 선하고 바르고 온전한 길로 이끌어 가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즐기면 된다. 이 땅에 즐길만한 게 얼마나 많은가. 좋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며 맛보는 것. 이것이 죄를 지는 것인가? 아니다. 성경은 그렇게 살라고 한다. 죄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믿음을 지키는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래서 감사하게 누리면 된다.

이 일상을 하나님의 선물과 축복으로 누림과 동시에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우리가 만끽하는 기쁨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할 때다. 남 험담할 때, 남의 사고를 구경할 때, 타인의 고통을 적당히 관망할 때 등등. 이러한 충돌이 있을 때 주님의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을 최선을 다하며 누리되, 믿음의 가치관과 충돌할 때 기꺼이 버리면 된다. 굉장히 쉬운 방법이지만 누구나 성공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이 세상과 함께 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의 내면을 점검해보자. 우리 마음 속에 우선순위가 있다.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은 몇 순위인가. 2순위라면 세상을 챙겨야 할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적당한 순위지만 하나님의 기준에서는 ‘기타 등등’에 속하는 범주다.

만약 하나님을 명분상 1순위로 올려놨는가? 우리의 목숨을 내어드리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이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드리겠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명분상 1순위로 올려놓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진짜 1순위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믿음의 밸런스 게임을 하며 순위를 가려보자. 그렇게 하나님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길 바란다. 이것이 복잡하고 난해한 세상을 명쾌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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