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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지기위해모이는교회

24A 9nd, 야고보서 4:11-12, 말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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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9 / 야고보서 4:11-12 / <말하지 않고> / 흩모교 지성해p

각 사람의 대화 특징이 있다. 미래를 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당장 코앞의 현실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고, 긍정적인 면에 치중하는 사람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각 사람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비방과 판단을 하는 부류의 사람도 많다.

이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스토리가 약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를 계속 하고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의 콘텐츠가 부족하다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져온다. 또 다른 특징은, 이해력과 공감력이 낮거나 없다. 사람이 하는 생각과 행동, 감동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대동소이하다. 기질에 따라 퍼뜩 납득되지 않기도 하지만 기쁨, 슬픔, 억울함 등의 감정 버튼은 비슷하다. 그래서 상대방의 입장을 금방 이해하고, 상대방이 어떠한 상황인지 유추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해과 공감이 되지 않아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져오며 그것을 비방과 판단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서 공감을 지능의 문제라고도 한다.

그래서 비방과 판단을 하는 것은 자신의 매력을 깎아내리는 일이다. 험담과 비방이 자신의 교양과 매력을 증가시키기 보다 떨어뜨린다. 이해력과 공감능력이 낮거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비방하는 행위를 조심한다. 그래서 걱정이라는 방법으로 비방과 판단을 위장한다. 걱정하는 모습으로 포장해 상대의 치부를 ‘툭!’ 던진다.

그리스도인으로써, 교양인으로써도 비방과 판단은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누군가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을 금지한다. 성경에서 금지하는 이유는 사람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넘어서서 믿음의 기초를 흔드는 것으로 설명한다. 우리의 인격과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가벼운 위험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중 근간이 되는 것을 뒤흔든다고 표현한다.

어떤 부분이 믿음의 근간을 흔들만큼 위험한가.

비방과 평가에서 가장 선행되는 요건은 ‘기준’이다. 기준에 벗어났기 때문에 판단하고 비방한다. 옳고그름의 판단 속에는 기준이 항상 존재한다. 가장 위험한 것은, 그 기준이 ‘나’가 된다는 것. 옳고그름의 기준이 내가 된다면, 나의 성향, 태도, 상식, 감정, 기질로 평가가 달라진다. 옳은 판단인지, 그른 판단인지와는 별개로 내가 기준이 되는 행위 자체가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에게는 위험한 일이 된다.

온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되기 때문에 기준을 ‘나’로 잡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기준과 부딪히기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도가 떨어지게 된다. 즉, 이것은 죄의 근본이 된다.

우리는 죄의 근원을 선악과 사건으로 꼽는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던 선악과를 따먹은 그 행위는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일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된 것은 좋은 지식일 수 있다. 구분하여 악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되니까. 하지만 선악과를 먹기 전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하나님이었다. 그래서 아담의 상식과 기호에 맞춰 옳고그름을 임의대로 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낱낱이 하나님께 여쭸다.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렸다. 하나님의 주도권에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람도 옭고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과는 별도로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삶을 살아가려고 했다. 이것이 선악과 사건의 본질이다.

우리 내면에는 하나님이 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하나님이 되어 전지전능한 것들을 다스리는 것까진 아니어도, 하나님의 역할 중 일부를 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게 ‘비방’과 ‘판단’이라는 행위다. 그러므로 비방과 판단은 하나님의 기준과 지식이 아닌 나의 시야를 기준으로, 마치 이 모든 세상의 주인인 양 착각하도록 이끄는 행위다.

그래서 판단과 비방은 내가 속한 공동체를 파괴한다. 내가 가진 기준과 하나님이 가진 기준,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준이 맞부딪힌다고 생각해보자. 마찰과 분란이 끊이지 않을 터.

그러므로 구원받은 백성에게 비방과 평가는 굉장히 위험하다. 율법의 판단자로써 벗어나도록 안간 힘을 써야 한다. 하나님의 자리를 욕심내지 않고, 그 자리에 오를까 어떻게든 거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방과 판단을 거부하는 것은 우리의 교양과 그리스도인의 덕을 위해 입 밖으로 내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아예 머릿속에서 그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완성된 상태다.

비판과 판단이 일어나는 과정을 자세히 보면 꼭 거치는 단계가 있다. 사실에 직면하는 단계다. 상대방의 사실, 정황 등을 먼저 인식한다. 그 사실에 대한 반응으로써 비방과 판단을 진행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실을 인식하고 거짓말 한 것에 대해 비방하고 판단한다. 비방과 판단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거짓말을 한다면 그냥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00가 거짓말을 했네”라는 팩트에서 생각을 멈추면 된다.

이게 반복되면 사실을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멈추는 게 훈련된다. 여기서 율법의 준행자로써의 자리를 사수한다. 율법의 심판자의 자리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준행자의 자리로 가서, 율법을 행하기 위해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 지, 성장을 위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생각의 전환은 우리의 삶을 변화해간다. 심판자의 자리로 가면 우리의 의는 높아지지만 상대는 고통스러워 한다. 반면 준행자의 자리로 가면 상대를 진심으로 도울 수 있으며, 우리 역시 더욱 깊은 성숙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공동체의 지체로서 할 수 있는 전부다. 율법의 준행자로서 건실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율법을 수행하기 시작할 때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도울 수 있다. 몇 마디 한다고 틀린 점이 고쳐지지 않는다. 우리가 율법의 준행자로 살아갈 때 나 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점점 성장시키는 것에 대해 오늘 본문 중 12절에, 판단과 기본을 기본값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체를 물으신다. 그럴 권한이 없다고 하신다. 12절의 질문에 당당하고 진솔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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