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4 이사야 53:5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죽으심을 살펴보고, 그를 따라야 할 것을 알아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책임을 우리와 연결하고 있다. ‘찔림’은 본인의 잘못이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고, 그의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고 연결하고 있다. 또 우리의 회복과 평안, 안정과 즐거움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고 있다. 예수님이 죽음의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기 시작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고백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이 우리에게는 화평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이 우리에게 안정이 되었다고 한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 됨’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준다. 나의 상황이 상대방에게 연결되고, 상대방의 상황이 그대로 나에게 연결된다. 감정이 서로 오고간다. 나의 아픔이 상대방에게 전이되고, 상대방의 기쁨이 나에게 공유 되기도 한다. 심지어 나의 기쁨과 슬픔이 아니어도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함께 느끼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감정을 넘어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 방향, 비전 등까지도 ‘하나 됨’ 안에서 공유된다.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태도를 정하는 모든 기준들이 서로 공유된다. 이렇게 상대방과 내가 융화되어 다른 색깔과 태도로 연결된다. 서로의 관계가 얼마나 깊이 있게 연결되었느냐에 따라 온전하게 비례한다. 서로 깊이있고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면 감정과 비전은 더욱 강렬하고 온전한 영향을 받는다. 다만 서로의 관계가 느슨하다면 주고받는 감정과 비전의 영향 조차 느슨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느슨한 연결 선도 끊어지게 되기 마련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각각 식구들은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어느 하나의 슬픔은 가족 한 명의 슬픔으로 남지 않고 가정 모두의 슬픔이 되기도 한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아픔과 즐거움은 함께 전이되고 공유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또 하나를 만들어간다.
공동체마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큰 교회 공동체의 약점은 여기서 드러난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주변 사람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작은 교회의 장단점도 있다. 누군가의 아픔이 거기서 머무르지 않고 내 아픔으로 깊이 다가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만드신 진정한 모습으로 만들어져 간다.
돌아오는 주간부터 고난주간이다. 매년마다 다가오는 고난주간이다. 절기는 1년을 주기로 반복하며,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할 수 있는 장치다. 올해 우리가 보낼 고난주간의 계획은 어떤지 스스로 생각해보자.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보낼 것인가. 오늘 이 ‘연결’이라는 맥락으로 고난주간을 보내보자. 우리의 상태와 주님과 연결해보자. 주님과 우리의 연결 상태를 점검해보길 권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라고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래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또한 우리의 아픔과 슬픔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깊이 공감하신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삶의 방법과 태도가 하나님과 밀접하게 관계있다는 것을 말한다.
일상을 살다보면 어느순간부터 하나님과 나와 연결된 연결고리가 느슨할 때에도, 더 나아가 끊어져있다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시작은 주님을 위해, 주님을 목표로 했지만, 모든 일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삶의 이유를 ‘주님’으로 꼽는다. 가령, 배우자를 만날 때 하나님의 뜻을 이 가정 속에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하나님께 드렸을 터. 또한 회사에 입사할 때 그리스도인의 선한 가치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했을 터.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명과 맞바꿀만큼의 기쁨과 힘듦이 공존하는 과정애서도, 부모의 만족 도구로 사용하기 보다는 이 아이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선한 목표를 갖는다. 모든 것을 이렇게 시작한다. 주님이 빠진 목표는 없다. 주님의 뜻이 배재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시작한 일들 속에서 어느순간 돌이켜보면 주님이 빠져버리게 된다. 선한 의지와 노력에 함몰되어 초반에 어떤 꿈과 계획을 가졌는지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전보다 주님에 대한 연결이 느슨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연결고리가 끊어져 하고 있는 모든 일상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고 믿음과 동떨어진 삶으로 방향이 전환된다.
고난주간에는 느슨해졌던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 고리를 긴밀하게 만들어보자. 우리가 세워놓았던 계획부터 더 깊숙이 나아가 삶의 태도와 방법이 주님과 맞닿아 있는가 되돌아보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명령을 일상에서 반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점검하고 적립해보자. 바울은 롬12:!5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주님 역시 동일한 맥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이웃들과 내 삶이 연결되어 있는가, 내 삶이 이웃을 향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내 소망과 꿈과 삶의 결과물이 나와 함께 하는 동료들과 연결되 있는가 정립하고 조율해보자. 이 게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진짜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관성에 의해 맞이하는 고난주간이 아니라 우리 일상을 멈추고, 나의 본성이 즐거워 하는 것을 잠시 그만 두고, 강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 마치 깊은 슬픔에 절감하는 것에 흉내내는 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더욱 가까워보자. 이를 통해 우리의 비전과 꿈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될 수 있도록 조절해보자. 고난주간이 아니더라도 이 일들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작업이다.
우리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맞닿아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는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과 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족적과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자. 우리의 목표가 주님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는지, 일상이 사랑하는 이웃의 눈물을 고려하고 있는지 점검해보자.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내 삶에 반영되어 있지 않는다면 아직 우리는 ‘하나 됨‘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 됨은 자연스러운 마음을 전제한다. 하나님의 뜻이 내 비전이 되고, 이웃의 애절함과 긍휼함이 나의 아픔과 기도로 바뀌는 것. 이것이 하나 됨의 본질이자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삶의 본질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책음과 아픔을 느끼는 사람, 고통과 죄책감을 갖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과 평안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죽으심으로 인해 얻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는 것이 그의 죽음에 깊이 동참하는 것. 그러므로 그의 고난과 죽음의 책임이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방식대로 표현되길 바란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평안이 우리의 일상에서 펼쳐지길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결이 어느정도 비슷해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라는 것을 기억하자.
한 주 간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삶의 결을 살아가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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