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10, 갈라디아서 4:21-31, 0701 22’
210910, 갈라디아서 4:21-31, 0701 22’
- 관찰하기
생소한 표현
바울은 여종과 자유 있는 여자와의 비교를 통해 율법과 복음을 비교합니다. 율법의 행위를 따르는 자들에 비해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21절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23절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31 현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 이해하기
21절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그들이 새로운 복음을 버려두고 율법아래에서 만족하는 이유는 뭘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이미 완벽한 복음이었고 추가로 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그것을 오래동안 지켜왔기에 익숙했고 그 익숙함이 새로운 것 & 완전한 것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때로는 아주 오래됨 그 자체가 새로운 하나님의 복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로 익숙함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새로움을 향해 성장하고 변화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새로움에 다가서는 첫 발은 익숙한 것에서 떠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은 율법을 추구하여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자 했던 유대인들을 일컬어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연구하기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일들을 제공하십니다.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영역과 장르의 일들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뛰어난 창조성을 드러내시고 그 안에서 오만과 편견없이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수용하도록 우리를 성장시키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익숙한 생각과 행동을 박차고 나와 인간의 도전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은혜에 노출되기를 바라십니다.
- 점검하기
매일 새로운 은혜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은혜를 기대합니다. 그러한 은혜로 일상이 지루할 틈이 없고 또 어떤 일들을 행하실지 기대감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그 어떤 일들을 어렵지 않게 시작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됩니다. 다만 새로움으로 시작된 일들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다소 아니 아주 지루한 과정이 필수적이며 그것을 견뎌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 적용하기
일상에서 경험하는 당혹스러움을 새로움의 관점에서 해석하겠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에 맞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이 불편함이 아닌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상황을 예의주시하겠습니다. 결국 그 일이 나의 계획과 상식을 깨어 그리스도의 깊은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장의 시간임을 겸허히 인정하겠습니다.
나눔 5
- 박진선2021. 9. 10.이전 사이트
210910 금, 갈라디아서 4:21-31, 0810 60' - 관찰하기 바울은 하갈과 사라로 비유하여 율법에 매여있는 사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차이를 자유라고 하였다. - 이해하기 30)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육체로 난 여자의 아들은 율법에 메인 자를 비유한다. 약속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고 자유가 보장된다. 세상은 자유를 제멋대로 사는 것으로 여기지만, 오늘의 본문은 율법에 메이지 않아도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 연구하기 하나님은 에덴 동산의 회복을 위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시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경작하고 다스리며 살았다. 마냥 방종하며 놀지 않았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자유 역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는 자들에게 주워진 특권이자 선물이다. 그래서 참 된 자유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처럼 책임과 사명 없이 내뜻대로 사는 것도 아닌, 율법에 매여 삶에 제한을 덧붙이는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가 이 땅에 다시 올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다. - 점검하기 나는 유업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돌이켜본다. 과연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간다 입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준비가 되어있었는지. 내 안에서 자유는 혼종이었다. 세상의 정의를 따라가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는 부담감에 조금씩 사로잡혀 제한을 뒀었다. 그래서 믿음이 깊어질수록 내 삶에는 자유가 없다고 느꼈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오늘 자유의 정의를 다시금 깨달았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을 경작하고 다스려야 할 사명이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 받았기 때문이다. - 적용하기 내 안에 있었던 자유의 정의를 하나씩 지우며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다스리고 경작해야 하는지 방법과 대상을 간구해 보겠다.
- 최한빛2021. 9. 10.이전 사이트
210910 목, 갈라디아서 4:21-31, 1545 40’ - 관찰하기 율법주의자들에게 기록되어 있는 율법에 대하여 말을 하면서, 기록된 율법, 사라와 하갈의 출산이 비유된 표현이라는 가르침을 준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남편과의 합으로 출산을 진행한 아들이 아닌, 남편과의 합이 없이도 잉태하여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에게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올바른 진리를 믿는 옳은 방향성이라고 말하며, 비유를 통해 말해준다. 23절. 육체를 따라 났고: 남녀의 자연적 생식 기능에 따라서 잉태되어 태어난 것을 말함. - 이해하기 23, 28~29절: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23,28] 처음 본문을 읽었을 때는 진짜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왜 갑자기 이런 비유가 들어가는 건지,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건지. 하지만 위의 23절 ‘육체를 따라 났고’라는 부분에 대한 해설을 보고 난 후에 본문을 읽으니 대충이라도 감이 잡혔다. 그 중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는데 해당 부분은 아브람일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분으로 상속받을 자녀를 주겠다는 “약속의 말”로부터 자식을 잉태했던 부분인 것임을 보았다. 이와 같이 위 말씀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얘기가 ‘구원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비유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라고 말함. >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상속자를 주겠다는 약속과 동시에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는 약속을 하심. > 해당 약속은 아브라함의 먼 훗날의 족보, 계보상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말로 그를 통한 수많은 인간들의 구원, 그리고 서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을 말함. > 고로 약속의 자녀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닌 구원받는 사람들을 말함. [29] 그런데 말씀에서는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라고 말한다. 즉 예수님께서 구원의 열쇠가 된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자들이 그를 못박아 죽인 것처럼, 지금 또한 예수님께서 구원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율법주의자들이 율법을 지키라라며 박해한다는 것을 말한다. - 연구하기 23, 28~29절. 결론부터 놓고 말하자면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율법은 중요하다. 하지만 율법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방향이 잘못되면 결국 “육체를 따라 난 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방향성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가 아닌 가가 중요하다. - 점검, 적용하기 그렇다면 여기서 해야 되는 질문은 단 한가지다. “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니다.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고 있는지조차 혼란스럽다. 애초에 올바른 방향이 어딘지 길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다. 적어도 예배를 빠지지 말고 묵상훈련 3기를 수료하기로 했다. 그게 일단 잃어버린 방향성을 찾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다. 빠지지 않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면서 큐티를 해야겠다!
- 이현범2021. 9. 10.이전 사이트
210910 금, 갈라디아서 4:21-31 1. 관찰하기 창세기에 나오는 하갈과 이스마엘, 사라와 이삭의 비교를 통해 율법 아래 종된 자와 약속 안에서 자유한 자를 비교해서 설명합니다. 육체의 자녀가 성령으로 난 자를 박해하지만, 그들이 함께 유업을 같이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의미있는 표현 : 28절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30절 더불어 유업을 받지 못하리라 2. 이해하기 28절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물리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당신의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약속으로 하나님께 받은 아이가 감격스러울 수 있으나 정작 본인 스스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3. 연구하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신 것과 같이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4. 점검하기 내가 속한 상황, 성취의 정도에 따라 나 스스로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작 일상을 살다보면 부르심에 대한 고민 보다는 매일 당면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5. 적용하기 내 삶의 다양한 조건들로 나 스스로를 평가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 100세에 얻은 이삭과 같은 존재임을 묵상하며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생각하겠습니다.
- 이은수2021. 9. 10.이전 사이트
관찰하기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난 사라의 아들과 여종 하갈의 아들에 비유해서 율법을 중요시하는 사람과 그리스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을 비교하였다. 이해하기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보고 작년부터 코로나 시대를 지내면서 교회라는 이름을 둘러쓰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지 않을 짓을 많이 하고 결국엔 교회 전체가 같이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이 생각났다. 전 세계에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그 안에서 전염병이 퍼지고 했던 상황들이 그리스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것 보다는 율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이스마엘의 백성이 생각났다. 연구하기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시다. 예전에 천주교와 기독교의 차이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많은 차이가 있지만 장소를 교회로 여기는 것과 사람을 교회로 여기는 것이 차이라고 봤던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꼭 성당이 아니더라도 있는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했다. 왠지 하나님께서 그걸 잊고 교회와 목사님만 찾는 크리스쳔들에게 알려주시고자 이런 엄청난 바이러스를 퍼트리지 않으셨을까 생각을 해봤다. (그 전부터 수도 없이 알려주셨지만 우리가 끝까지 알아듣지 못해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신건 아닌가 라고도 생각해봤다.) 점검하기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을 이용했던것 같다. 예배를 꼭 교회에서 드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그 말에 교회도 잘 나가지 않았다. 사실 중요한건 하나님을 믿는 마음인건데 그냥 나 하나 편하고자 편한대로 이용했다. 적용하기 유투브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씻고 옷도 좀 갖춰입고 했지만 점점 시간이 갈 수록 잠옷 바람으로 앉아있게 되었는데 이제는 다시 깔끔하게 준비하고 예배준비를 해야겠다
- 심지나2021. 9. 10.이전 사이트
210910, 갈라디아서 4:21-31, 1100 30’ 나는 언약의 자녀이므로 자유하라 말씀하신다. *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율법의 경계에서 항상 고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하라 말씀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 어려운 일이 생기거나 벽에 부딪쳤을 땐 나도 모르게 율법적인 관점에서 사고하게 되는 것이다. 당장에 행위로 인해 오는 안도감 같은 것을 얻기위함 같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항상 깨달을때까지 갈급한 시간이 길어졌던 기억이 있다. 율법에 기대면 자유함이 없고 행동을 해도 답을 주시지 않는 하나님을 의심하게되고 시험에 들게되며 평안없는 초조함만 가득하다. 돌이켜보면 그런 육체의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보다는 내가 중심이 되어 아둥바둥하는 것일뿐이기 때문인것 같다. 주님께서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들에게 자유함을 주셨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이므로 주님의 영원한 언약을 믿고 자유하고자 내려놓았을때에야 비로소 상황과 관계 없이 주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알게 되고 깊은 은혜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주님, 제 중심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한 언약을 사모하며 자유한 주님의 자녀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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