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104 화, 요 1:29-42 0740 36’
220104 화, 요 1:29-42 0740 36’
- 관찰하기
본문은 예수님의 만난 요한과 그의 제자들의 고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표현합니다. 요한의 제자 2명은 에수님을 찾아가 교제를 나눈 뒤 메시야임을 고백합니다.
29절,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32절 성령이 비둘기같이/ 37절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절 랍비여/ 41절 메시야
- 이해하기
41절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예수님과의 교제 이후에 그를 부르는 호칭이 랍비에서 메시야로 바뀌고 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과의 존재가 단순한 랍비나 교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메시야임을 강조합니다.
말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인간의 구원자입니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훌륭한 선생, 그 이상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 연구하기
하나님은 깊이 교제를 통해서만 진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성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과는 달리 경험적 & 개인적인 교제가 수반될 때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분주한 시간들을 쪼개어 하나님과의 긴밀하고 개인적인 교제의 자리로 나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섬세하고 친근하게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만족을 경험케 하십니다. 때로는 언제라도 만남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 가벼워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만큼 우리와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 점검하기
예수님은 나에게 복지사였고 교사였으며 현재는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수록 인간적으로 해석했던 정체성 너머에 더 크고 비밀한 정체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동안 믿음 생활을 통해 진짜 예수님을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이외의 다른 역할을 더 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있기에 정서적, 관계적인 친밀함보다는 지극히 목표지향적 관계를 맺어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믿음 안에서 바른 삶의 태도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조금은 더 친밀함 그 자체에 머물러 있어야 할 필요를 인정합니다.
- 적용하기
예수님이 랍비에서 멈추지 않고 나의 구원자임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여전히 무엇이가를 이루기 위한 협력의 관계 이전에 나의 영혼을 구원하시고 보듬으시는 보호자임을 다시금 되뇌이고 그 은혜가운데 잠시 머물겠습니다.
나눔 1
- 장여진2022. 1. 4.이전 사이트
220104 화, 요1:29-42, 1316 29’ -관찰하기 요한과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난다.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어린 양이라고 한다. -이해하기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어린양’ 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요한은 예수님이 희생되실 것이라는걸 알고 이런 표현을 한것일까? 어린양 이라는 뜻이 그저 하나님의 자녀임을 뜻하는 말인줄로만 알았는데, 이 구절을 통해 자기 자신을 희생을 제물로 삼아 인류의 죄를 대신한 예수님을 뜻하는 말이 어린양임을 알게 되었다. -연구하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큰 계획을 세우시며 그것을 실행하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신 큰 그림을 모르기 때문에 닥쳐오는 불행에 쉽게 볼멘소리를 낸다. 그럴때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대로 일이 해결되기를 바라며 인내하고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점검하기 삶 속에서 위기가 닥칠때마다 쉽게 지쳤지만 이제는 인내하며 기도할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적용하기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마음 갖고 때를 기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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